모세는 애굽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바로의 얼굴을 피하여 미디안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디안 땅에 머물며 우물 곁에 앉았던 날에 미디안의 제사장 르우엘(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딸들을 만나 그들의 양무리에게 물을 먹였다. 이드로는 모세를 초대하고 대접하였으며, 모세가 그의 딸 십보라와 동거하기를 기뻐하였으므로 그는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어 사위를 삼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두 아들을 낳았다.
시간은 급속하게 흘렀고 이스라엘은 애굽에서의 고역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조상들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기 위하여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는 모세를 호렙산에 이르게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한 것이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모세는 장인 이드로와 작별을 고하고 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애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와 그의 가족이 가는 길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셨으나 십보라는 돌칼(a flint knife)을 취하여 그 두 아들의 양피를 베어내어 두 아들의 할례의 피흘림으로 모세의 죽음을 면하게 한 것이다.
모세는 애굽에 당도하였고,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은 할례의 고통으로 인하여 미디안 장인 이드로의 집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사료(思料) 된다(출18:2~6). 모세의 미디안에서의 생활은 40년이라는 가장 활발했을 장년의 때를 애굽의 바로를 피하여 보낸, 그냥 사는(just living), 아니 생존을 위한 결혼이었으며, 생존을 위한 삶(Marriage for survival, A life for survival) 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이러한 막중한 인생의 직무가 주어지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그동안의 삶을 산 것이다.
애굽으로 내려간 모세는 자기 백성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하나님을 대신하여 역사했다. 끝없는 고뇌, 걍팍했던 바로와의 전쟁은 애굽의 장자와 짐승들의 처음 난 것들을 말살해 버리는 최후의 죽음을 불러일으켰으며, 바로는 마침내 손을 들어 여호와의 백성을 내어놓았다.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은 걷고 또 걸었다. 이제는 거칠 것 없는 길이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혼의 즐거움이 그들의 행로에 주어진 기쁨이었을 것이다.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의 승리가 있은 후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돌려보내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 두 아들을 데리고 모세를 방문하여 장막에 이른 것이다.
모세의 사역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힘입고 나아가는 일이었다. 이때에 미리암은 자신들이 선지자라는 직분에 대한 과신이었거나 모세의 독자적인 지도자의 영력에 대한 질투심과 자존심의 과욕으로 모세가 구스여자를 취하였다는 비방으로 모세를 괴롭힌 것이다(민12:1-3). 그러나 그 구스 여자(his Cushite wife)는 (for he had married a Cushite woman)-이미 모세와 결혼 했던 에디오피아 여자로 모세의 아내 십보라이다.
그러므로 후처인 “wive”로나, 첩 “concubine”으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경은 아내(wife)를 “후처”나 “첩”으로 혼동하여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아들들을 광야에서 처음 대하는 얼굴이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모세의 결혼은 40년 전 오늘의 소명을 두고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