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운목사 지난11일 목회 50주년 기념
본지 논설위원 백남운 목사가 ‘백남운 목사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출간했
다. 백남운 목사는 효자동교회에서 은퇴하기까지 그동안 숨겨놓은 50년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지난 11일(주일) 공개했다.

백 목사는 이 책의 출판기념 모임을 외부에 알리자는 지인들의 권유를 물리
치고 주일 11시에 전주 인선협회관에서 출판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 배는 이옥희 선교사 사회로 채규방 목사 설교, 허종현 신부 서평, 정
동영 장관 축사, 김동건 목사 축도로 마쳤다.

백남운 목사가 지난 11일 열린 출판감사예배에서 조현영 사모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백남운 목사는 정치적 격변기인 70년대 초 학번으로 전북대 4학년 재학 중
위수령반대로 강제징집을 당한다.
제대 후 사명을 갖고 장신대 입학해 첫 목회지로 북아현교회 전도사와 새
문안교회가 구로지역에 세운 교회에서 노동자 야학의 지도자로 사역했다.
그때 새문안교회 대학부 출신의 서경석 목사, 이근복 목사와 관계를 갖는
다. 이 후 전주에서 목회의 전 생애를 보냈다.
백 목사는 목회와 함께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통합 교단의 대구 김상해 목
사, 목포의 임서현 목사, 광주 이경석목사, 한철완 목사, 진주의 박창재 목
사 등과 함께 전북에서 인선협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백 목사는 전주의 달동네라는 빈곤한 곳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
녔다. 그리고 고교 졸업 후 중앙대 약대를 들어가려다가 실패하고 가나안농
군학교 김용기 장로에게 은혜받고 완산교회를 다니며 전북대 농대로 입학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가난한 것은 농촌이나 농민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라는 의식을 갖고 흥사단에 들어가 기독학생활동을 하게 된다.
백 목사는 4학년때 박정희의 위수령을 맞아 이에 반대한 전국 대학생 173
명이 제적당할 때 같이 당하여 강제 입영한다. 그러나 혼자 이를 저항하며
사법제기를 하려고 하자 청와대까지 보고돼 훗날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
군 제대 말년에는 청소년기의 사명을 회고하면서 신학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장신대에 입학한다. 29세에 북아현교회(안광국 목사)에서 교육 전도사를
시작으로 남양만 이화리교회와 새문안이 개척한 구로공단의 우리교회를
거쳐 제주 화북교회서 3년을 사역한다. 그리고 전주 효자동교회로 부임하
여 35년간 목회 후 은퇴했다.
효자동교회 부임 시 교회 결산이 2,700만 원이었는데 건축을 시작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1987년 기공예 배를 드리고 무일푼으로 시작해 기도
하면서 온 교회가 힘을 합쳐 기적적으로 완공한다.
이후 주변에 현대, 롯데 아파트가 신축되고 인구가 늘면서 교회는 비약적
성장을 이룬다. 몇 년 안 돼 부채를 다 해결하고 적립금이 4억 원이 될 정도
였다. 이어 교육관과 청소년 문화관까지 짓고 지역적으로 눈을 돌려 당시
유종근, 강현욱 도지사, 김완주, 송하진 전주 시장과 함께 전북과 전주 발전
을 위해 힘썼다.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역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겼
다.
그러나 2018년 은퇴를 앞두고 예우 문제를 다루는 제직회서 예기치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한 장로가 “백목사 님은 돈이 많으니 은퇴 후 예우는 안
해도 된다”면서 새만금 간척 찬성 등으로 수억 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백 목사는 “나는 단 한 푼도 받은 일 이 없다”라고 했지만 교인들
은 믿지 않아 실망도 컸지만 원로목사 예우나 전별금 없이 언젠가는 진실
이 밝혀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모의 권유로 조용히 교회를 떠났다.
백 목사의 부인 조현영 사모의 부친은 장수 출신 조준현 장로로 전주고를
나와 공무원도 지내고 여행사를 운영해 재력이 있었다.
백 목사 처제 한일장신대 조현애 교수는 백 목사에게 대학원 학비로 400
만 원을 건넸는데 백 목사가 이를 무명으로 건축헌금을 했더니 돈이 많은
줄 오해를 한 것이다. 또 언니 생활 비로 드린 것도 그랜드 피아노가 필요해
헌납 하니 오해를 샀다는 것이다.
원로목사도 되지 못하고 예우도 받지 못한 채 섭섭 하게는 은퇴를 했으나
은퇴한 지 5년이 지나 효자동교회로 부터 행사 초청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다 잊고 하나님께 맡기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반가워
하는 교인들을 보면서 지난 섭섭함을 모두 잊었다고 회고했다.
백 목사의 가족으로는 조현영 사모 사이에서 남매가 있는데 아들 백영기 목
사는 장신대 졸업 후 미국 샌프란 시스코대학에서 공부하고 목사안수는 미
주한인장로회에서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 (D.min) 을 받고
귀국후 한소망교회와 치유하는 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광주의 대형교회로
부임했다 그러다 몇년 전 뜻한 바 있어 뜻을 같이하는 교인들과 나와 광주
에 하길교회를 개척하여 목회 중인데 이북노회 소속이다.
백 목사가 교회 이외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곳은 전북인권선교
협의회다. 효자동교회와 아쉬운 이별을 한 후 어디 나갈 교회가 마땅찮을
때에 마침 인선협이 사무실을 구입했고 인선협교회로 하여 지금까지 예배
를 드린다.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지만 백목사는 교회서 일절 사례는 받지
않고 헌금은 선교비로 나누고 있다.
백 목사는 한일장신대 복지과를 졸업하고 동문이 되고 100주년 기념사업
과 총동문회장도 역임했다. 이밖에 이 책에는 고 김용복 총장에 대한 복권
운동, 기전학교 이전, 전통시장 살리기, 전주시 기독교 성지화 추진, 무주 국
제 태권도공원유치, 전주 성폭력예방치료 센타와 상담소 건립, 장기수 김광
수와 문병천 목사 후원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아 백남운 목사의 행동하
는 믿음의 삶을 밝히고 있다.
/장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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